녹슨 철근 사이로 유영하는 ‘삶의 울림’

미술·건축


녹슨 철근 사이로 유영하는 ‘삶의 울림’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ㆍ철근공 출신 조각가 김창환 이달 22일까지 ‘철근전’


“철근, 철사는 내 자화상 같다. 성긴 모습이 그렇고, 의지나 힘이 느껴져 애착이 간다. 현대 물질문명의 기초이기도 한 철은 작가로서 여러 이야기를 담고 풀어내는 데 좋은 재료다. 제 삶의 중요한 일부이기도 하고….”


조각가 김창환(45)은 굵고 녹슨 철근이나 철사, 은빛의 스테인리스 철사 등을 재료로 작업한다. 무겁고 딱딱한 것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지닌 조각품으로 거듭난다. 권력의 부조리와 그 허무함, 배금·물질주의의 경계, 인간성 상실, 나아가 희망과 꿈까지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아낸다. 두세 가닥의 철근을 자유자재로 엮은 작품이든, 수천 개의 철사 조각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용접한 작품이든 모두 철근의 물성을 오롯이 드러내면서도 소박하고 간결하다. 그래서 오히려 울림이 깊다.경기 광주시 쌍령동 영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 작가의 ‘철근전’은 전시 제목만큼이나 담백한 작품들 속에서 풍성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김창환의 ‘Swimming’.




“신작 20여점이다. 저만의 작품세계를 통해 이 사회, 우리 자신의 삶을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여러 가지 어렵던 어린 시절에 ‘왜 사나’란 고민을 많이 했고, 이왕 살아갈 거면 제 생각, 색깔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자 했다. 난관 속에서 작가가 됐고, 저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 ‘상어’들이 허공을 유영한다. 작가를 대표해온 스테인리스 철사 상어가 아니라 묵직한 ‘철근 상어’들이다. 매끈하게 빠진 몸매의 상어는 바다의 최고 포식자다. 우리 사회에 빗대면 거대한 권력, 힘을 은유한다. 작품에 다양하게 구현된 다이아몬드 패턴은 상업권력, 배금주의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멀리서 작품의 그림자까지도 재미나게 감상하던 관람객들은 녹슨 철근에 놀라 작품에 바짝 다가서서 살펴본다.


바닥 한쪽엔 노가 얹힌 ‘배’가 있다. 몸체가 막히지 않았으니 물에 띄우면 바로 가라앉는 배, 기능을 상실한 배다. 아무리 노를 저어봐야 물이 빠져나가 헛일이다. 16㎜의 굵고 무거운 철근을 사용한 작품은 권력·돈·명예 등 지나친 욕심에 대한 경계의 표현이다.


둥근 구 작품은 자세히 보면 철근의 선과 그 선들이 만들어내는 면이 모두 십자가 형태다. 다른 구는 불교의 ‘만’자가 구를 만들고 있다. 온전함이나 영원을 상징하는 구를 통해 작가는 종교의 긍정적 기능, 본래의 역할을 강조하는 듯하다. 벽에 걸린 ‘무제’는 그야말로 ‘철근 추상화’다. 길고 짧은 세 개의 철근이 교차하기도 하며 뻗어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인생길 등 관람객마다 다른 생각이 가능하다.




김창환 작가


사실 김 작가에게 철근은 그저 재료가 아니라 삶의 일부다. 그는 건축공사 현장의 철근공 출신이다. 고교 졸업 후 집안 형편상 출장 이발사 등 온갖 직업을 전전했는데 철근공도 그중 하나다. 어린 시절 가진 미술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마침내 고교 졸업 후 10년 만에 미술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원까지 마치며 철근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작가생활이 결코 쉽지 않지만, 5년 전부터는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동안 개인전, 단체전을 통해 주목도 받았다. 영은미술관 단기 입주작가이기도 한 그는 현재 대만 푸봉아트센터에서 초대전도 열고 있다.


“24시간 오로지 작업에만 매달린다”는 작가는 최근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철판을 캔버스로 삼아 용접봉으로 형상을 그리는 독특한 ‘철판 회화’다. 광섬유를 이용한 작업도 구상 중이다. 김 작가는 “깊은 사유를 거쳐 가슴으로 작업하는 작가”이기를 원했다. 9월22일까지. (031)761-0137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