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 욕망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에의 의지 - 최태만

유영, 욕망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에의 의지


최태만/미술평론가


김창환이 스테인리스스틸 철사로 만든 상어들을 공중에 매달아놓고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이 상어들이 바다 속을 유영하는 것이 아니라 창공을 날고 있는 유선형의 비행물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선들로 구성된 형태는 체적이 최소화된 상태이므로 비행(飛行)의 이미지에 더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빛나고 있는 금속의 선들로 이루어진 상어의 군집(群集)은 위협적이라기보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비쳐진다. 더욱이 실물에 필적하도록 재현된 상어의 이미지는 디지털에 의해 복원된 가상실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그의 작업실에서 본 상어 무리들은 대부분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조명효과를 받지 않은 그것들은 마치 실물을 제작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프레임처럼 보이기도 하고 공간에 그려놓은 드로잉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특별히 상어를, 그것도 선으로 재현하려고 했는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상어에 관한 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것이 바다 속의 포식자란 이미지이다. 특히 1975년에 제작된 <죠스(Jaws)>는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든 영화로 유명하지만 식인상어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을 증폭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날카롭고 예리한 이빨을 가진 상어가 먹이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는 영화 죠스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의 공포를 더욱 고양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김창환이 제작한 상어에서 이 무시무시한 이빨은 생략돼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실물의 재현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상어에 주목한 이유는 자신의 사회경험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만학인 그는 고학을 하면서 어렵게 조각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미술대학에 다니면서도 그는 보일러 수리나 건축공사현장에서 철근을 가설하는 작업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하며 학비를 모았다고 한다. 이렇듯 어렵게 조각을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마쳤지만 그에게 삶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것이었고, 특히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 치러야할 어려움 또한 만만치 않음을 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구조와 그것을 작동하고 있는 한 축인 권력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로 하여금 바다 속의 난폭한 포식자인 상어를 통해 거대한 힘을 지닌 강자의 허구를 폭로하도록 이끌었다. 그에게 상어는 시공의 한계를 초월하여 도처에 출몰하는 권력의 지배욕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그러나 상어를 실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자연사박물관에나 전시할 교육용 자료를 만드는 것보다 무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그 상징적 의미를 은유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마침 철근구조물을 설치하면서 경험했던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이 만들어내는 어른거림, 선이 형태를 구성하는 것에서 발견한 가능성을 더 발전시켜 컴퓨터의 3D 시뮬레이션 도구를 통해 대상을 재현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작가가 합성수지로 직접 제작한 상어의 외형을 이용해 스테인리스스틸 철사를 용접하며 연결한 선들로 구성된 것이다. 크기도 대부분 3미터 이상이기 때문에 성긴 선들에 직조된 상어가 제법 실물에 필적하는 결과를 거두고 있다. 이때 상어의 표피를 이루고 있는 선들은 아가일(argyle) 패턴 즉, 다이아몬드나 십자형 또는 불교의 상징인 만자(卍字)의 형태를 반복한 것인데 그 패턴이 지닌 상징성 때문에 이것이 혹시 종교적 함의(含意)를 지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비늘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연속된 패턴은 흥미롭게도 여성용 망사스타킹의 다이아몬드 구조로부터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망사스타킹의 다이아몬드 패턴은 자본이 만들어놓은 구조이자 상업성이 발현된 것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권력의 상징인 상어의 외형을 이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제작하여 권력과 상업주의의 결합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상어가 탄생한 것이다. 한편으로 일정한 모듈을 지닌 이 아가일 패턴은 산업사회 이후 현대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격자형 구조에 대해서 떠올리게 만든다. 기능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격자구조는 생태환경조차 인위적으로 변형하며 단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보이지 않는 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격자에 포위돼 있으며, 그것을 작동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욕망이다.


다이아몬드든 십자형이든 상어의 표피를 구성하고 있는 이 패턴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선들이 상어의 입으로 수렴된다. 즉 최초의 선은 입으로부터 출발해서 다시 입으로 수렴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입은 먹이의 포획과 섭취를 위한 기관이므로 포식을 상징하지만 아울러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에게는 상호소통을 가능케 하는 신체기관이자 실수의 원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는 입은 권력의 무자비한 폭식성에 대해 암시함과 동시에 말실수나 식언(食言) 등을 통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나약함의 상징한다.


따라서 권력의 상징인 상어는 바다 속의 포식자일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출몰하는 강자이거나 거대한 조직일 수도 있다. 어딘가를 향해 무리지어 가는 상어는 파국적 대단원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권력의 허망함에 대한 은유라고도 볼 수 있다. 아울러 눈이나 코와 같은 감각기관이 제거된 상어는 권력의 무상함, 즉 정처 없이 부유하다 침몰하는 권력의 속성에 대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발생과 소멸의 과정을 밟는 자연의 순리처럼 기세등등한 권력도 언젠가는 부침한다는 작가의 믿음이 공격적이면서 동시에 멍청해 보이는 상어의 형태를 통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어는 불특정한 권력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신분상승을 통해 권력의 쟁취를 꿈꾸고 있는 작가 자신의 욕망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사회적 입신이나 경제적 성공을 통한 부의 축적, 정치적 영향력의 쟁취 등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욕망이기 때문에 넓게 보아 상어는 인간이 가진 욕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부피는 크지만 무게는 한없이 가벼운 상어는 그러므로 인간이 지닌 욕망의 가벼움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허공중에 빛나는 모세혈관과도 같은 선들로 이루어진 이 물체는 그러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의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자 하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에 대해서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김창환이 만들어놓은 상어는 바다 속을 유영하는 포식자이자 거대한 권력을 쥔 난폭한 지배자이기도 하지만 탐욕으로부터 해방돼 창공을 날고자 하는 자유에의 의지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